1983년 창업한 비트컴퓨터는 기업이 영속하는 비결을 잘 알려준다.
지난 12월 중순, 대한민국 ‘벤처 1호’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인하대 전자 78)을 만났다. 43년 격변의 IT 환경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기업을 이끌어온 비결은 무엇일까. 기사의 서두를 그의 경영철학 정수가 담긴 두 가지 답변으로 연다. 이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기업의 영속성을 고민하는 모든 경영자에게 던지는 묵직한 화두다.
“기업의 진정한 역할은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데 있습니다. 소인배적인 경영자는 오직 이윤 추구에만 몰두해 독자 생존만 꾀합니다. 그러나 저는 늘 ‘이타심’을 바탕으로 산업 생태계 전체를 고민해왔으며, 이것이 저의 확고한 철학입니다. 나만 잘되는 것은 진정한 경쟁력이 될 수 없습니다. 홀로 선 나무는 아무리 강해도 사막의 거센 모래 폭풍과 가뭄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울창한 숲을 이룬다면, 그 속의 나무들은 서로 의지하며 지속가능한 생존과 성장을 이어갈 것입니다.”
“직원들이 수입차를 타더라도 저는 국산차를 고집합니다. 명품 옷을 입지 않으며, 식사도 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해결합니다. 부와 영향력이 커진 채 세월이 흐르면 대다수 사람은 처음의 순수한 마음을 잊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창업 40년이 넘은 지금도 초심 그대로 살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누구나 창업 초기에는 좋은 제품으로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욕심이 커지면, 수익을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원가절감에 나서곤 합니다. 토요타가 한때 위기에 처했던 것도 결국 부품 원가를 지나치게 낮추려다 발생한 결과가 아닙니까. 직원 복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직원의 삶보다 투입되는 비용을 먼저 따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렇게 변질되지 않으려고 늘 자신을 점검하고 경계합니다.”
조 회장의 답변을 관통하는 사유의 뿌리는 단연 ‘이타심’이다. 자신을 공동체와 분리하지 않는 이 통합적 사고는 ‘방향(Direction)’, ‘실행(Execution)’, ‘확장(Expansion)’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견고한 체계를 이룬다. 모든 것의 시작인 ‘방향’은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묻는 ‘초심’에서 결정된다. 이 본질적 질문은 구체적인 ‘실행’ 단계로 옮겨진다. 벤처 1호의 자부심은 ‘모범 경영’과 ‘정도 경영’이라는 원칙을 낳았고, 개인의 의지가 아닌 시스템으로 구조화된 ‘몰입’은 차곡차곡 기업의 경쟁력으로 ‘축적’된다. 이 단단한 내공은 마침내 ‘확장’으로 뻗어나간다. 적자생존의 경쟁을 넘어 공멸을 피하는 ‘상생’, 나아가 개별 기업의 성공을 넘어 산업 전체에 기여하겠다는 ‘생태계’ 조성 전략이야말로 ‘조현정식 경영’의 최종 지향점이다. (조현정 회장 사유 체계도 참조)
그의 사유체계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조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봤다. 그는 한국 IT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83년 창업 이후 수많은 언론이 그를 주목해왔다. 1980~90년대에는 ‘컴퓨터 예비 재벌 대학생 사장’(1985년), ‘소프트웨어의 선두 주자로 부상한 대학생 사장’(1984년), ‘소프트웨어 개척에 나선 무서운 젊은이’(1987년), ‘컴퓨터에 미친 한국의 빌 게이츠’(1990년), ‘기적의 사나이 비트컴퓨터 사장’(1990년), ‘컴퓨터 업계의 떠오르는 별’(1990년) 등 그를 조명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 그의 위상은 더 높아지고 단단해졌다. 기술거래소 이사장(2003년), 한국벤처기업협회 회장(2005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2013년)을 역임하며 한국 벤처산업의 성장과 제도화에 기여했다. 이 시기 언론은 그를 ‘한국 벤처’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기록했다. 그는 동탑·은탑·금탑 산업훈장을 모두 수상한 인물이다.
경영자로서도 ‘자기만의 길’을 고수해왔다. 그는 43년간 사업을 해오는 동안 한눈팔지 않았다. 남들처럼 무리한 확장에 나서지도 않았다. 의료정보와 헬스케어 시장에 집중하며 한 우물만 팠다. 회사 경영뿐 아니라 벤처 생태계의 조성과 성장에도 온 힘을 쏟았다. 무엇보다 43년 동안 IMF 외환위기, IT 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 글로벌 기업들의 국내 진출 등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그는 이를 모두 넘어섰다. 비트컴퓨터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른바 ‘작지만 강한 기업’의 모범으로 자리 잡았다. 조 회장 역시 43년째 CEO로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
여기서 기자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는 왜 무리한 확장에 나서지 않았을까? 모두가 매출과 외형 성장을 좇을 때, 왜 의료와 공공 소프트웨어라는 좁은 시장을 고집했을까? 나아가 자신의 회사를 넘어 벤처 생태계 조성에 그토록 헌신한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숱한 위기를 뚫고 ‘작지만 훌륭한 기업’을 일궈냈을까? 그 해답은 결국 그의 ‘경영철학’에 있다. 철학은 존재의 이유를 규명하고, 기업이 ‘왜’ 이 일을 하는지를 정의한다. 이는 비전이나 전략보다 선행하는 질문이며, 위기와 유혹의 순간마다 흔들리지 않는 판단 기준이 된다. 철학이 분명한 기업은 외형 성장이나 단기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무엇을 더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먼저 정하고, 빠른 길보다 책임 있는 길을 택한다. 조 회장의 경영이 지난 43년 동안 방향을 잃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1. 이타심
2000년 3월 10일, 코스닥지수는 장중 2925를 찍으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바야흐로 ‘닷컴 버블’의 절정이었다. 덩달아 조 회장의 개인 지분 가치도 단숨에 1000억원을 넘어섰다. 숫자가 주는 비현실적인 무게감 때문이었을까.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 산책에 나섰다.
“그날따라 유독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습니다. 달을 쳐다보고 있자니 지나온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더군요.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그만둬야 했을 만큼 고생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 있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1000억원이라니, 25년 전이니 너무나 어마어마한 돈이잖아요. 덜컥 겁이 나면서도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죠. 지분을 일부 팔아 개인적인 안정도 찾되, 무엇보다 이제까지 해왔던 공익적인 일을 더 강화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조 회장은 벤처 생태계 조성에 이전보다 더 열성적으로 헌신했다. 벤처기업협회, 소프트웨어산업협회 등 산업 인프라 구축에 앞장서는 한편, 비트교육센터와 조현정장학재단를 설립해 인재 양성에도 아낌없이 투자했다. 이 모든 행보의 중심에는 ‘공존’의 철학이 있었다. 그는 “나만 잘사는 길은 단명의 길이며, 더불어 잘살아야 장수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생태계가 비옥해야 내 나무도 잘 자라는 법입니다. 언제까지 독야청청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기적인 경영으로는 기껏해야 몇 년 반짝할 뿐, 수십 년을 버틸 재간이 없습니다. 저는 항상 이타심을 나침반 삼아 생태계 조성에 에너지를 쏟아왔습니다. 그것이 비트컴퓨터가 흔들림 없이 걸어온 길이기도 합니다.”
조 회장의 ‘이타적 리더십’이 벤처 생태계에 어떤 혁신을 가져왔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한다. 벤처생태계 조성과 비트교육센터·조현정장학재단 설립이 그것이다.
첫째, 황무지였던 벤처업계에 ‘법과 제도’라는 인프라를 깔았다. 그는 1995년 이민화(메디슨), 장흥순(터보테크), 변대규(휴맥스) 등 1세대 벤처기업가 13명과 의기투합해 벤처기업협회를 창립했다. 이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제3대 협회장직을 수행하며 생태계 조성의 최전선에 섰다. 협회의 발자취는 곧 한국 벤처의 역사였다. 1996년에는 코스닥(KOSDAQ) 시장 개설을 주도해 자금 회수와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특히 1997년 제정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특별법)’은 벤처기업의 법적 정의를 확립하고, 스톡옵션 제도와 기술담보대출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명문화해 후배 기업가들의 등용문이 되어주었다.
‘벤처 천억 클럽’을 결성해 벤처의 ‘규모와 비전’을 증명했다. 그가 협회장 재임 시절인 2005년 6월, 클럽이 공식 출범했다. 당시만 해도 ‘벤처기업’이라 하면 ‘기술은 있지만 영세하고 불안하다’는 편견이 지배적이었다. 조 회장은 “벤처도 대기업 못지않은 매출과 고용을 창출하는 ‘규모의 경제’를 이뤘음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첫 행사에서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68개 벤처기업이 선정됐다. 이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었다. ‘벤처=중소기업’이라는 낡은 등식을 깨뜨리고, ‘벤처도 중견기업, 나아가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강력한 롤 모델을 세상에 공표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벤처천억클럽 회원 수는 985개사, 매출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다음인 재계 3위, 고용인력은 삼성전자보다 많은 재계 1위 수준으로 성장했다.
둘째, 비트교육센터와 조현정장학재단을 통한 ‘사람’에 대한 투자다. 조 회장은 소프트웨어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1990년 ‘비트교육센터’를 설립했다. 당시는 개발자의 95% 이상이 ‘코볼(COBOL)’을 쓰던 시절이었는데, 그는 과감하게 차세대 언어인 ‘C언어’의 대중화를 선언했다. 투자는 파격적이었다. PC 한 대가 100만원이던 시절, C언어 교육을 제대로 하겠다며 대당 600만~700만원을 호가하는 고성능 워크스테이션을 학생 개개인에게 제공했다. “제대로 가르치지 않을 거면 시작도 안 했다”는 그의 고집이었다. 전국에 C언어 개발자가 100명도 채 안 되던 불모지에서 시작한 도전이었다.
교육 방식은 ‘스파르타’ 그 자체였다. 소수 정예로 선발된 교육생들은 6개월간 주말 없이 하루 13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수업을 견뎌야 했다. 특히 국내 최초로 시작한 ‘프로젝트 중심 교육(PBL)’은 현장 적응력을 극대화했다. “비트 출신이 만든 포트폴리오라면 대기업 면접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전설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 36년간 적자를 내면서 배출한 ‘비트 출신 전사’ 9500여 명은 평생취업률 100%를 기록하며 IT 코리아의 허리를 지탱해왔다. 가히 조현정식 ‘생태계 경영’이 낳은 최고의 히트 상품이라 할 만하다.
이타심 경영은 2000년 ‘조현정장학재단’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는 벤처기업인이 사재로 만든 ‘국내 1호 장학재단’이다. 설립 배경에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봐야 했던 그의 아픈 기억이 서려 있다. 그는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하는 서러움만큼은 내 후배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설립의 변을 밝혔다. 재단은 고등학교 2학년생을 선발해 대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4년간 1인당 총 1300만원의 장학금을 지속적으로 지급하며 인재들이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26년째 지원하고 있다.
조 회장의 이타심은 생태계에서 ‘1호’의 책임감이 작동한 측면도 크다. 비트컴퓨터는 소프트웨어 전문회사 1호, 대학생 벤처 1호, 테헤란밸리 입주 1호, SW업체 중 병역특례업체 1호, 벤처기업인이 설립한 1호 장학재단, 북한 교류 협력 1호 등 다수의 ‘1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의 경영철학은 달라이 라마가 설파한 ‘현명한 이기심(Wise Selfishness)’의 실천판이라 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는 “어리석은 자는 눈앞의 이익만 챙기다 고립되지만, 현명한 자는 남을 도움으로써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했다. 조 회장의 이타심도 ‘나 혼자만 잘 살 수 없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척박한 사막을 울창한 숲으로 바꾸어냄으로써 공멸을 피하고 다 함께 번영하고자 하는, 전략적 차원의 ‘상생’으로 해석된다.
2. 초심
2003년 3월, 국내외 경제는 그야말로 ‘신뢰의 붕괴’에 직면해 있었다. 그보다 2년 전인 2001년,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Enron)과 통신 거인 월드컴(WorldCom)이 분식회계로 하루아침에 파산했다. “아무리 돈을 잘 버는 거대 기업도 비윤리적이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국내 상황은 더욱 참담했다. 2000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IT 버블 붕괴의 후폭풍은 2003년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가 터졌고, 무분별한 신용 팽창은 카드 대란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벤처 신화’의 몰락이었다. 김진호 게이트(골드뱅크) , 진승현 게이트 등 성공 신화로 포장되었던 벤처기업들이 실상은 로비와 주가조작의 온상이었다는 사실이 줄줄이 밝혀졌다. 이 총체적 난국 속에서 조 회장은 다시금 ‘초심’의 무게를 절감했다. 무너지는 기업들을 보며 그가 선택한 길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Back to the Basic)’이었다. 그해 조 회장은 서울대 조동성 교수를 주축으로 출범한 민간 주도 ‘윤경SM포럼(현 윤경ESG포럼)’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후 창립 멤버 중 유일하게 ‘CEO 서약식’에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이 개근한 그는, 현재 공동의장을 맡아 묵묵히 윤리경영의 길을 앞장서 걷고 있다.
“당시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공멸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지요. 비트컴퓨터는 창업 초기부터 의료계에 만연했던 관행에 맞서 ‘리베이트 0원‘을 고수해왔습니다. 당시 IT 업계 관행상 룸살롱 접대나 리베이트 없이는 수주가 불가능하다는 비아냥도 들었지만, 저는 한 번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뇌물을 주거나 장부를 조작하면, 그 거짓말을 덮기 위해 나중에는 더 큰 비용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정도를 걸어야 CEO의 에너지를 온전히 경영혁신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사람인지라 저도 모르게 업계 관행에 젖어 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 스스로 초심을 다잡고, 나아가 우리 회사와 벤처 생태계를 지켜내기 위한 방파제로 삼고자 윤경포럼에 열중했습니다.”
조 회장은 유독 ‘초심’을 강조하는 경영자다. 그는 회사 홈페이지에 명시한 경영철학 첫머리에 “초심을 강조한 정도경영으로 절대가치를 키워갑니다”라고 적었다. 이 문장에는 초심, 정도경영, 절대가치라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가 등장한다. 주목할 점은 그가 ‘초심’을 맨 앞에 세웠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경영 행위의 대전제다. 초심이라는 단단한 ‘뿌리’가 있어야 비로소 정도경영이라는 곧은 ‘줄기’가 뻗어나갈 수 있고, 그 끝에서 비로소 절대가치라는 고유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 회장의 초심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를 규정짓는 흔들리지 않는 기준점이다. 즉,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공동체와 상생하겠다는 ‘이타심’을, 비트컴퓨터라는 조직을 통해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일관성을 부여하는 힘이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그가 내린 선택들에서 명확히 증명된다.
“국세청이 A사를 조사하다 보면 그와 거래한 B사까지 연쇄적으로 조사를 받게 됩니다. 즉, 협력사가 불량하거나 부정을 저지르면 우리 회사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구조지요. 저는 아예 그런 리스크 자체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IMF 외환위기 직후, 거래처의 부정이 드러난 사건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무탈했습니다. 당시 한 회사가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며 거래를 제안했지만, 자금을 빼돌리는 정황이 포착되어 즉시 거절하고 거래를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그들과 협조했다면 공범이 되었겠지요. 높은 수익을 포기하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것, 제가 윤리경영과 초심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훌륭한 기업은 단순히 규모나 매출로만 정의될 수 없습니다. 보통의 기업들은 시장 독식을 원하지만, 저는 ‘상생’이야말로 기업이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는 길이라 믿습니다. 제가 인재 양성에 그토록 힘을 쏟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비트교육센터에서 공들여 키운 인재들을 경쟁사가 원하면 기꺼이 보냅니다. 내가 키운 제자들이 경쟁사에서 승승장구하며 우리 직원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구도, 그것이 곧 산업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대한민국 SW 산업의 경쟁력이 커지지 않겠습니까.”
성공은 종종 독이 된다. 조직이 비대해지면 관료주의에 젖어 들고, 구성원들은 ‘우리가 최고’라는 오만에 빠져 안주하기 쉽다. 조 회장의 위기감은 바로 이 지점에 있었다. 성장은 필연적으로 편법과 타협이라는 유혹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배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초심’이라는 닻이었다. 수많은 경쟁사가 외형 확장을 좇을 때, 비트컴퓨터가 의료 소프트웨어 외길을 걸으며 깊이를 더할 수 있었던 비결은 명확하다. ‘돈보다 가치’를 추구했던 창업 초기의 결심이 경영의 나침반이 되어준 덕분이다. 43년간 지켜온 이 뚝심이야말로 오늘날 비트컴퓨터가 가진 대체 불가능한 ‘절대가치’의 원천이다.
3. 몰입
1983년 8월, 대학교 3학년생이던 조현정 회장은 공모전 상금과 아르바이트로 모은 450만원을 쥐고 창업을 결심했다. 직원이라고는 자신과 대학생인 동생, 단 둘뿐이었다. 그는 대학교 2학년 때인 1982년, 국내 최초의 상용 패키지 SW인 ‘의료보험 청구 프로그램’을 개발해 업계에서 ‘SW 천재’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문제는 코딩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는 호텔 스위트룸을 장기 임대해 간판을 걸었다.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렇게 2년 반 동안, 그는 호텔방에 스스로를 ‘감금’한 채 코딩에만 매달렸다. 미팅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땀을 뻘뻘 흘리는 그를 보고 상대방이 ‘자네 겨울옷을 입고 왔네’라고 말한 적도 있다. 계절이 바뀐 것도 잊은 것이다. 뇌의 모든 신경을 개발에 쏟아붓는 사이, 계절이 바뀌어 6월의 초여름이 된 줄도 몰랐던 것이다.
“출퇴근해야 하는 일반 오피스에서는 기껏해야 하루 12시간 정도 일할 수 있지만, 호텔에서는 출퇴근과 주말 없이 17시간가량 몰입할 수 있습니다. 하루 5시간 차이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시간이 1년, 2년 쌓이면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집니다. 창업 초기에는 자본도 경력도 인맥도 없었기에, 제가 가진 유일한 자산인 ‘시간’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각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 환경이 절실했고, 호텔은 그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해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조 회장의 지독한 몰입은 전문가들의 눈에도 경이로운 연구 대상이었다. 강북삼성병원장을 지낸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1986년 베스트셀러『자기대로 삽시다』에서 조 회장의 실명을 밝히며 성공 요인을 ‘삼매(三昧)’로 정의했다. “조현정의 성공이란 시간의 흐름, 배고픔, 육체적 고통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몰입으로 일하는 기쁨의 ‘삼매’ 뒤에 따라오는 선물이었다.” 여기서 삼매란 의식이 하나의 대상에 완전히 합일되어 분산, 잡음, 자아의식이 사라진 집중 상태를 뜻한다.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몰입(Flow)’ 개념과 정확히 일치한다. 심리학적으로 몰입 상태에 도달하면 주의력이 과제에 온전히 쏠리면서 인지 자원이 최적화된다. 이 과정에서 학습 속도와 이해의 깊이는 비약적으로 상승하며, 창의적 영감과 복잡한 난제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발현된다.
결국 조 회장의 오늘을 있게 만든 결정적 원동력은 ‘몰입’이었다. 주목할 점은 그가 몰입을 개인의 덕목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조직 구조가 자주 흔들리거나 방향이 수시로 바뀌면 구성원의 몰입은 깨지기 마련이다. 비트컴퓨터가 무리한 외형 확장 대신 안정적인 사업 영역과 조직 구조를 고집해온 배경에는 이러한 철학이 깔려 있다. 그는 지금도 “나는 몰입하는 상태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성공’이라는 결과 때문이 아니라, ‘문제해결’이라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의료 현장에는 늘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납니다. 문제해결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의 몰입은 고갈되지 않았습니다. 성공을 목표로 하면 언젠가는 지치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를 풀다 보면 시간은 사라집니다. 저는 그 상태가 가장 생산적이고 행복합니다.”
조 회장의 몰입은 단순한 성실함이 아니다. 그것은 문제를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치열한 태도이자, 경쟁력을 끊이지 않게 유지하는 핵심 생존 기술이었다. 비트컴퓨터가 40년 넘게 흔들림 없이 버티는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 ‘끊이지 않는 몰입’의 힘이 ‘축적’된 결과다.
4. 축적
수많은 기술 기업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동안, 비트컴퓨터가 반세기 가까이 생명력을 유지해온 비결은 무엇일까. 그 답은 명확하다. 사유의 뿌리인 ‘이타심’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성찰하며 ‘초심’을 지켜내고, 치열한 ‘몰입’으로 한 우물을 파온 시간들이 켜켜이 축적된 결과다.
견고하게 축적된 시간 덕분에,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공동체를 존중하며 상생을 추구하는 조 회장의 철학은 40여 년이 흘렀어도 훼손되지 않고 온전하게 보전될 수 있었다.
이러한 조 회장의 경영철학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체화됐다. 하나는 내부를 향한 단단한 신뢰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를 향한 무거운 책임감’이다. 먼저 내부를 들여다보면, 조 회장은 ‘종업원’이라는 용어를 철저히 거부한다. 그에게 직원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회사의 운명을 함께 짊어진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직원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과 신뢰는 파격적인 자율 경영과 실질적 복지라는 조직문화로 발현됐다.
자율 경영의 핵심은 결재 서류에 CEO 날인란이 없는 회사다. 그는 “담당 직원이나 팀장이 판단해서 집행한다. 회장인 내가 도장을 찍거나 서명하는 서류는 하나도 없다”라고 단언한다. 이는 단순한 위임이 아니다. ‘전문가인 당신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최고 수준의 존중이자, 직원 스스로 책임감을 갖게 만드는 고도의 경영전략이다.
복지 또한 보여주기식이 아닌, 직원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시행한다. 지방에서 올라온 직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사택을 제공하고, 입원이나 수술을 하게 되면 본인부담금 전액을 지원하며, 라식수술과 치아보존, 모발이식에 60% 이상 지원한다. 지난 15년 전부터 자녀가 탄생하면 출산장려금으로 5000만원을 지급하다 보니 가정 평균출산율이 1.47명이다. 아울러 매년 주주 배당의 추가 10%를 ESG의 이해관계자자본주의에 맞게 직원들에게 주식으로 보상한다. 이처럼 비트컴퓨터의 복지 시스템은 회사의 성장이 곧 직원의 부로 직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직원을 소모품이 아닌 동반자로 대우할 때 기업도 영속할 수 있다”는 조 회장의 지론이 만들어낸 결과다.
외부적으로는 상생경영을 통해 ‘벤처 1호’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조 회장은 성공한 기업가로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그는 여전히 현역이자, 대한민국 벤처 생태계의 마중물 역할을 자처한다. 그가 바쁜 일정을 쪼개 전국의 대학과 포럼을 돌며 청년들에게 기업가정신을 설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이 받은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고, 후배들이 걸어갈 길을 닦아주는 것이야말로 선배 기업인의 도리라 믿기 때문이다.
결국 비트컴퓨터의 43년은 단순한 세월의 경과가 아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겨 조직을 단단히 했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시대를 깨워온 밀도 높은 축적의 역사였다. 이타심으로 씨를 뿌리고, 초심으로 뿌리를 내리며, 몰입으로 줄기를 세운 비트컴퓨터는 지금도 그 축적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조 회장의 오늘은 경영자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지난 43년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출처 : 포브스코리아(Forbes Korea)(https://www.forbes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