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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 우리의 상흔(傷痕), 역사는 돌고 돈다

등록일 2025-07-28 11:20 URL복사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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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인들의 여행지로 인기 있는 곳 중 하나가 일본이다. 오사카와 교토, 대마도 등에 특히 많이 간다. 그곳에는 우리 선조들의 한 서린 흔적이 남아 있다. 멀리는 신라시대 박제상을 비롯해 가까이는 구한말 최익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시대 박제상은 왜국에 볼모로 잡혀 있던 눌지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출하고 자신은 목도(木島)에 귀양 가 화형당한 것으로 돼 있다. 그리고 「일본서기」에는 더 구체적으로 대마도에서 박제상이 화형을 당한 것으로 나온다. 조선 순조 8년 편찬된 「만기요람」 ‘일본상통해로’에 “냉천진의 칠리탄은 박제상이 죽은 곳인데 신숙주도 여기에 이르렀다”라고 돼 있다. 왜국의 신하이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충절을 지킨 박제상의 순국비가 상대마도(히타카쓰) 가미아가타죠 사고 미나토마을 바닷가에 세워져 있다. 충절의 박제상이 그나마 순국비로 인해 원혼을 달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한국인 관광객이 대마도에 넘쳐나도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대마도에는 구한말 면암 최익현의 순국비도 세워져 있다. 이 비는 하대마도(이즈하라) 엄원정(嚴原町) 대수교(大手橋)의 지금은 폐허가 된 수선사(修善寺)에 방치돼 있다. 신념을 갖고 단식으로 투쟁한 충절가 면암의 현주소였다. 구한말 면암은 제주도와 흑산도 그리고 대마도에 3번의 유배를 당했다. 대마도 유배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윤4월 정읍의 무성서원에서 모임을 가진 후 ‘창의토적소(倡義討賊疏)’를 올리고 74세의 노구로 전라도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저항한 일로 투옥된 사건이다. 상대가 일본군이 아니라 조선군임을 알고 투항, 대마도로 압송되고 1906년 11월 17일에 순국했다. 18일 입관해 수선사에 잠시 모시고 20일에 부산으로 운구됐다. 이런 관계로 추모비가 수선사에 세워졌다. 올해 6월 엄원정 티아라몰광장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차고 넘쳤다. 면암의 순국비는 누구도 찾지 않았다.

지난해 오사카와 교토, 나라시를 여행했다. 자연히 한국인들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교토시 동산구 차옥정(차야마치)에 위치한 코무덤을 찾았다. 그곳에는 우리나라 역대 왕들의 무덤보다도 더 크게 보이는 코무덤(비총·鼻塚)이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안내문에는 ‘이총(耳塚)’으로 돼 있고 비총(鼻塚)은 괄호 안에 갇혀 있었다. 주변의 공원 이름도 ‘이총공원(耳塚公園)’이었다.

왜 ‘코무덤’이 아니고 ‘귀무덤’인가? 1597년 정유재란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가등청정과 소서행장에게 조선인 코를 베어오라는 명을 내려 12만6천여 명이나 되는 경상도, 전라도 사람의 귀가 아닌 코가 베어졌다. 그래서 ‘이총’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어렵게 찾아간 이 역사의 슬픔이 담긴 그곳에도 방문객은 없었다. 쓸쓸한 마음에 곧바로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참을 머물렀다.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청수사(淸水寺)로 향했다. 관광객이 골목길을 꽉 메웠다. 그런데 태반이 한국인이었다. 일부는 문화 체험인지 기모노를 입고 사진을 연신 찍고 있었다. 그중에는 우리의 젊은이들도 있었다. ‘코가 없는 사진은 어떤 모습일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사카성을 방문할 때만 해도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생각해 역사를 알아야 일본도 안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기모노를 입고 사진 찍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고 난 후부터는 역사를 잊고 있는 게 아닐까? 코 무덤에서 코도 없이 숨 쉬고 있을 원혼의 얼굴들과 기모노 입은 젊은이들의 얼굴이 교차됐다. 게다가 고구려 담징이 그린 나라시 법륭사의 금당벽화는 철조망으로 가려진 상태로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기모노 입은 우리의 젊은이와 코가 베어진 약 500년 전의 우리 조상, 철조망 속에 갇힌 금당벽화의 부처님, 방치된 순국비, 이것이 일본 속 우리의 현실이었다.

광복절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벤츠 차량에 욱일기를 붙이고 다니는 운전자, 욱일기 티셔츠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라이더, 현충일 부산 아파트에서 대형 욱일기를 게양했다는 기사가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올해는 서울 모 대학에서 욱일기를 전시한 학생이 제적 처분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독도 침략과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 정부다. 역사를 잊으면 미래는 없다. 지금 우리는 역사를 잊고 있지나 않은지, 일본 땅에서 온몸으로 저항한 순국선열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역사에서 미래를 읽어내자.

 


윤인현(국문82) 

인하대 프런티어창의대학 교수

출처(발췌) 기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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