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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 개교 70년…인천과 하와이, 그리고 인하대학교] 하와이 이민 사적지를 가다

등록일 2024-12-05 14:44 URL복사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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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독립·교육 이끈 선각자들 좇아 뚜벅뚜벅

인하대총동창회 탐방단 4박 6일 답사
이민 첫 도착 호놀룰루항 7번 부두 방문
한인기독교회서 우남 교육의지 곱씹어
루크 부주지사와 유대·교류 지속 한뜻
푸우이키 묘지선 이민 선조 애환 기려

 

 

▲ 푸우이키 묘지는 와이알루아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한 17명의 한인 이민자와 자녀 19명이 안장되어 있다. 2003년 미주 한인 100주년을 기념해 박부찬 교수가 제작 기증한 추모비 앞에서 탐방단원들이 묵념하고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인하대총동창회

 

인하대총동창회(회장 김두한)는 올해 개교 70주년을 기념해 인하대 창학의 배경이 된 하와이를 방문했다. 지난달 30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탐방단 15명이 4박 6일 동안 돌아본 하와이 주요 이민 사적지 방문일정을 통해 '하와이와 인천 그리고 인하대학교'의 인연을 조명한다.

 

하와이 호놀룰루국제공항은 2017년 5월 이후 연방 상원의원을 역임하고 명예훈장을 수훈한 일본계 미국인 다니엘 K. 이노우에 국제공항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샤카(Shaka) 사인을 동반하는 '알로하'가 일상인 '지상 최대의 낙원' 하와이에 도착했다.

 

1902년 12월 제물포를 떠난 한인 이민의 여정은 일본을 거치며 꼬박 20일이 걸렸다. 121명이 승선해 여러 번의 신체검사를 마치고 호놀룰루항 7번 선창에 내린 최종 인원은 86명이었다. 이번 탐방단은 8시간의 비행보다도 2시간이 넘는 입국 수속에 지쳐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이 최고'라며 위로를 나눴다. 온화하고 여유 있는 슬랙 키 기타 연주와 우쿨렐레 선율이 신선한 공기 위로 흘렀다. 훌라 댄스를 연상하는 하와이안 음악이다. 성하의 날씨 속에 생기를 머금은 레이(Lei) 목걸이가 가슴을 포옹했다.

 

다운타운으로 가는 차창 밖 멀리 호놀룰루컨트리클럽(HCC) 언덕 위로 우남 이승만 박사가 말년 오랫동안 입원했던 핑크빛 건물의 트리플러육군의료원(Tripler Army Medical Center)이 눈에 든다. 우남은 의지하고 꿈을 펼쳤던 하와이에서 간절한 고국으로의 귀환을 이루지 못하고 작고했다. 이승만의 하와이는 독립운동의 전초기지였으며, 민족 교육운동의 산실이었다. 지난 2022년 12월, 인천시가 한민족 공식 이민 120주년을 기념하여 호놀룰루에서 개최한 '제물포에서 포와로, 다시 인천으로' 사진전 자료에서 제주도보다 작은 면적의 오아후 섬에 산재한 이민 유적지 30곳이 소개됐다. 탐방단은 ▲호놀룰루항 7번 선창 ▲한인기독교회 ▲인하공원 ▲마우라나니 요양병원 ▲푸우이키 묘지 등을 방문했다.

 

 

▲ 호놀룰루항 7번 부두(사진 가운데)는 1903년 1월 13일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최초의 한인이 도착한 지점으로 지난 1월 유정복 인천시장과 실비아 루크 하와이주 부주지사 등이 참가한 가운데 표지석을 세웠다. 사진 왼쪽 '알로하 타워'의 오른쪽 중앙이 7번 부두이다. /인천일보DB

 

 

▲ 파와아 인하공원(Pawaa Inha Park)은 2003년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 조형물 설치 후 2013년 호놀룰루시의회의 의결을 거쳐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게 됐다. 2008년 인천-하와이 자매도시 5주년 기념 인천시 조형물, 2010년 공원 표지석, 2013년 이민 110주년 기념 인하대 조형물(사진), 지난 1월 인천-하와이 자매도시 20주년 기념 및 이민 120주년 기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제공=인하대총동창회

 

▲ 마우라나니 요양병원은 이승만 대통령이 1960년 망명 이후 1965년 서거할 때까지 무료 간병을 제공했다.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도 이곳에 기거하며 이 대통령의 외로운 임종을 지켰다. 현재 대규모 리노베이션 기부금 조성 행사를 추진하면서 이 대통령이 요양한 202호(사진) '스위트룸'을 보전하기 위한 특별기부금을 모금하고 있다. /사진제공=인하대총동창회

 

 

첫날, 탐방단은 일명 바람산으로 불리는 하와이제도 통일 전쟁의 마지막 전쟁터였던 누우아누팔리 전망대에 올라 이날 유독 거센 바람 속에 긴 비행의 여독을 잠시 풀어놨다. 300여 m의 산 정상 절벽 아래로 카네오헤·카일루아 지역과 중국인 모자섬이 푸른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탐방단 일행은 한인기독교회 뜨락에 선 '우남 리승만 박사 상 DR. SYNGMAN RHEE(1875-1965)'을 보며 하와이에서 펼친 그의 기독교 정신과 민족 교육의지를 되새겼다.

 

호놀룰루 시내 이올라니 궁전 맞은편으로 하와이 대법원이 금빛 카메하메아 대왕 동상을 품었다. 한인 첫 대법원장이었던 고 문대양 대법원장은 하와이 한인사회를 이끈 상징적인 인물로 인하대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날 오후 하와이주립대 한국학연구소에서는 한국 국사편찬위원회와 공동으로 '하와이의 한국 디아스포라 아카이브' 주제의 콘퍼런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또 '방탄 리믹스' 북토크도 예고했다.

 

10월31일 오전 하와이주정부 청사에서 만난 실비아 장 루크 하와이주 부주지사는 “인하대 개교 70주년을 넘어 미래로 유대와 교류를 이어가자”고 강조했다. 저녁 와이키키비치는 좀비, 마녀 등 다양한 할로윈 특수 분장과 소품을 준비한 여행객들로 칼라카우아 거리가 북적였다. 모아나 서프라이더호텔 와이키키 비치바 해변 위로 쏟아진 금요일의 불꽃놀이와 드론쇼는 여행객들의 눈길을 머물게 했다.

 

탐방단은 주정부 청사 인근의 한국·베트남 전쟁 메모리얼, 푸우이키 묘지, 빅아일랜드 힐로 알라에 공동묘지 '한국이민조상기념비' 앞에서 묵념하며 이민 선조들의 애환을 기렸다. 미국 대선을 앞둔 여행 일정에서 트럼프 진영의 오토바이 액션, 경적 등 거리 선거운동이 이색적이다. 하이웨이 육교에서도 트럼프 깃발이 펄럭였다.

인하대총동창회가 여덟 번의 공식 하와이 탐방에서 머물던 대한항공 운영의 와이키키리조트호텔 주인이 지난 4월 대명소노그룹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탐방단은 로얄 하와이안센터의 스테이크 하우스, 새우트럭 등의 현지 메뉴를 체험했다.

 

노스쇼어 지역은 하와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서핑의 메카이다. 이민 한인들이 첫 발을 디딘 이곳 와이알루아에는 옛 설탕 공장의 긴 굴뚝이 남아 있다. 스치듯 만난 인근의 할레이바 올드타운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여행의 분주함을 덜었다.

 

/하와이 호놀룰루=김형수 주필 khs@incheonilbo.com

 

탐방코스

누우아누팔리 전망대-한인기독교회-카메하메하 동상-하와이주립대 한국학연구소 / 한국·베트남 전쟁 메모리얼-이올라니 궁전-하와이주정부 청사-와이키키 비치-알로하 타워 / 파와아 인하공원-태평양국립묘지(펀치볼)-비숍박물관-마우라나니 요양병원-호놀룰루항 7번 부두 / 할레이바 올드타운-푸우이키 묘지-돌 파인애플농장-진주만 / 빅아일랜드 힐로 알라에 공동묘지-화산국립공원-볼케이노 하우스 / 탄탈루스 전망대 등


 

 

하와이 한인사회, 인하대 설립 든든한 기반

 

1902년부터 3년 동안 7400여명 이주

한인기독학원 매각액 15만달러 기증

 

▲ 하와이 한인기독교회는 1918년 12월 23일 이승만 박사가 설립한 무교파 교회로서 1938년 광화문 문루를 본떠 교회를 재건축했다. 교인들 중 12명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됐으며, 지난해 국가보훈부 독립운동 사적지로 지정됐다. 이승만 기념관 '우남관'과 1985년 교인들이 세운 이 대통령 동상이 있다. /그림=김재열 서양화가·남동문화재단 대표이사

 

 

인천은 1902년 12월22일 대한민국 최초의 이민이 출발한 도시이다. 하와이 사탕수수·파인애플 농장에 최종 정착한 86명의 한인 이민 선조들을 필두로 1905년까지 7400여명의 한인들이 하와이로 이주했다. 그들은 피와 땀으로 번 돈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보냈고, 이주 120여년의 한인사회를 이어온 뿌리이다.

 

미주 한인의 대다수가 정착한 하와이는 우남 이승만과 박용만 등이 활동했던 독립운동 근거지로서 충분한 인적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우남은 박영효의 고종 폐위 쿠데타 음모사건에 연루돼 종신형을 받았으나 고종의 감형 특사를 받아 5년 7개월 만에 한성감옥에서 석방된 후 1904년 11월29일 대한제국의 밀사로 워싱턴으로 가던 중 하와이에 들러 교민들과 교류했다.

 

1910년 6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한인 최초의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 박사는 신민회 사건(105인 사건)으로 다시 1912년 3월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그해 12월 하와이로 간 32살 박용만의 초청으로 38살의 이승만은 이듬해 2월 하와이로 이주했다.

 

우남은 하와이에서 곧바로 미국 감리교가 운영하던 '한인기숙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해 그가 한성감옥에서 주장했던 여성 교육의 실천을 위해 남녀 공학 '한인중앙학원'으로 교명을 변경했으나 학교 당국과의 교육 갈등으로 사직했다. 1915년 7월 여학생 기숙사를 갖춘 '한인여학원'을 설립하고 이사장직을 맡았다. 남학생이 늘어나자 1918년 '한인기독학원'으로 교명을 변경했다. 1920년 갈리히 지역에 4000에어커 땅을 사서 학교와 기숙사를 크게 확장했다. 이 때 하와이 한인의 기금 조성과 학생고국방문단의 모금활동이 도움이 됐다. 우남은 1918년 한인기독교회를 설립하고 한글반 등을 운영했다. 1947년 한국기독학원을 매각한 대금 15만불은 추후 인하대학 설립 기금으로 기증됐다.

 

6·25 전쟁이 끝나갈 시기이고 하와이 이주 50주년이 되는 1952년 12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김법린 문교부 장관에게 '인천에 동양의 MIT와 같은 공과대학 설립'을 지시하고 1953년 6월4일 피란 정부 부산에서 '인하대학 설립에 관하여'라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승만 정부는 국무회의를 거쳐 대학 설립 기금 조성 조직을 편성했으며 전국 공무원, 공공기관, 기업 등이 참여했다. 국무의회 의결을 거쳐 1954년 2월 표양문 인천시장은 시의회 의결을 받아 대학 부지를 기증하게 됐다.

 

대학 설립을 위한 재원은 총 515만500불(3억903만환)로 ▲하와이교포기부금 15만불(900만환) ▲국내 민간기부금 100만불(6000만환) ▲정부보조금 100만불(6000만환) ▲UNKRA·UNCAC·한미협회 등의 원조금 300만불(1만8000만환) ▲기타 잡수입 500불(3만환)로 산정됐다(출처=인하50년사 상, 57쪽).

 

/신경식 인하대총동창회 홍보위원장

 

/인하대학교 총동창회·인천일보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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