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하대총동창회 하와이역사문화탐방단 일행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하와이 주정부 청사를 방문해 실비아 장 루크(오른쪽 두 번째) 부주지사와 환담하고 있다./사진제공=인하대총동창회
인하대학교총동창회(회장 김두한)는 개교 70주년을 기념해 지난 10월30일(현지 시간)부터 4박 6일 일정으로 인하대 창학의 뿌리인 하와이 역사문화탐방에 나섰다.
▲하와이주청사 방문 '교류 넓혀 미래로'…실비아 루크 부주지사 면담
지난달 31일 오전 탐방단은 실비아 장 루크(Sylvia Jang Luke, 한국명 장은정) 부주지사를 하와이주 정부청사에서 면담했다.
이날 실비아 루크 부주지사는 “인하대는 121년 전 하와이로 이주한 한인들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역경을 딛고 기회를 열어간 선구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1954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대학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명 '인하'는 인천과 하와이의 합성어로 한국 국민과 하와이의 역사적 연결을 상징한다”면서 “하와이 역사문화탐방단의 방문을 환영하고, 개교 70주년을 넘어 서로를 잇는 유대와 이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 실비아 장 루크(왼쪽) 하와이 주 부주지사가 김두한 인하대총동창회장에게 주청사 방문 기념증서를 전달하고 있다./사진제공=인하대총동창회
▲이덕희 한인이민연구소장 '하와이 이민과 한인사회' 하와이대 특강
30일 오후 하와이주립대 로스쿨 2강의실에서 열린 '하와이 이민과 한인사회의 발전' 주제의 특강에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장과 아만다 장 변호사가 나섰다. 인하대총동창회가주최한 이날 강연에는 조명우 총장, 김두한 총동창회장과 120학군단 후보생, 탐방단원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인하대 120학군단 후보생, 탐방단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하와이대 로스쿨 강의실에서 열린 특강에서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장이 ‘하와이 이민과 한인사회’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제공=인하대총동창회
- 강연 요지(이덕희 소장)
1889년부터 하와이에 기차가 운행됐다. 1903년 1월13일 첫 이민자들을 실은 갤릭호가 호놀룰루항 7번 선창에 도착했다. 그들은 호놀룰루항에서 기차를 타고 오아후 섬 북쪽의 와이알루아 사탕수수농장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파인애플 농장으로도 갔다. 이 지역 농장에서 운영한 푸우이키 공동묘지(Puuiki cemetery)에 한인 30여기의 묘비가 있다 - (인하대총동창회 탐방단 일행은 이튿날 이민 1세대들이 잠든 푸우이키 묘역을 방문해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 추모비' 앞에서 참배했다.)
1907년 미·일 간에 일본인들의 미국 이민을 금지하는 신사협정이 맺어지면서 일본인들은 두고 왔던 식구나 결혼할 신부, 이른바 '사진신부'를 데려왔는데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우리 한인도 일본 여권을 가지고 하와이로 올 수가 있었다. 1924년 일본인들의 미국 이민을 차단한 새 이민법이 적용되기 전까지 25년에 걸쳐 하와이에 890명의 한인이 들어왔다. 그 중 여성이 800명으로 120명은 두고 온 부인과 아이들이었고, 680명이 소위 결혼하러 온 사진신부로서 여성들의 유입 비중이 높았다.
1905년에 하와이에 거주한 한인이 7400명 정도 됐는데 191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4533명으로 감소했다. 2200여명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800명 정도는 미국 본토로 재이민을 떠나 하와이에서 한인 비중은 2%를 넘어본 적이 없었다. 이민자들은 하와이 여러 섬의 32개 농장으로 흩어져 정착했다.
하와이 이민자들의 첫 사회활동은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1902년 12월22일 이민선에 오를 때 인천내리교회 존스 목사가 축복기도로 환송했고, 이민선상에서 안정수, 김이재 전도사 등의 예배 인솔로 이미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이민자들이 많았다. 초창기 농장에서 예배를 드리고, 호놀룰루에서는 '코리안 미션'이라는 기도 그룹이 활동하면서 1903년 11월11일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가 창립됐다. 1905년 말에는 17개의 한인교회에 605명의 교인이 있었다. 하와이의 백인, 일본인 등 1000여명의 교인 중 한인이 60% 이상을 차지했다.
1905년 4월 에바농장에 처음으로 농장 교회당이 세워졌다. 대한제국의 밀사로 워싱턴으로 가던 이승만 박사가 1904년 11월29일에 하와이에 들러 에바한인감리교회 예배당에서 구국에 대한 연설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승만 박사가 떠나고 월급 18불을 받던 60여명의 한인 교인들이 1200불을 조성 목표로 농장주에게 교회 설립을 부탁하게 되지만 결국 300불을 모금해 내부 장식에 쓰였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한인의 재정으로 건립한 첫 번째 교회가 탄생하게 됐다. 1918년 12월23일 이승만 박사가 광화문을 본 떠 무교파 한인기독교회를 세웠다.
하와이에는 한인합성협회, 대한인국민회, 대한인부인회, 국민회, 동지회 등 여러 단체가 있었다. 국민회는 국민보, 신한국보를 발간했고 동지회 이승만 박사가 창간한 태평양잡지가 태평양주보로 이어져 1972년까지 발간됐다. 동지회는 자체적으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하와이섬(빅아일랜드) 힐로 지역에 동지촌을 설립하고 숯을 판매할 숯가마터도 세웠다.
호놀룰루에 한인 학교가 필요했던 이유는 공립학교는 연령 제한이 있어 한인 청년들이 신교육을 받을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1906년 9월2일 호놀룰루 감리교회의 후원으로 한인기숙학교가 설립됐다. 이승만 박사가 교장을 맡으면서 학교 이름을 한인중앙학원으로 변경했다. 고등과, 소학과, 국어과, 한문과를 설치하고 한글과 한문, 성경을 가르쳤다.
1914년 7월에는 여학생 기숙사를 둔 한인여자성경학원이 출발했고, 1918년 9월 한인기독학원으로 변경됐다. 일본인이 40%를 차지하는 호놀룰루 커뮤니티에서 당시 고국에서 들려온 3·1운동을 공공장소에서 경축하기란 매우 어려운 환경이었다. 1919년 4월12일 한인기독학원 마당에서 800명 혹은 1200여명이 모여 대대적인 행사를 열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1947년까지 존속돼 온 한인기독학원의 부지를 매각한 대금 15만불은 인하공과대학 설립의 종잣돈으로 쓰여졌다. 하와이 한인들은 여러 해에 걸쳐 인하대학에 5만불에 이르는 장학금을 보냈는데 태평양주보에 실리기도 했다.
15만불의 대학 설립 종잣돈은 1973년에 준공한 하와이교포기념관(실내체육관) 건설 비용의 일부로 투입됐다. 당시 하와이교포기념관에는 '이는 전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발의로 하와이 교포 이주 50주년을 기념하여 창립된 본 대학을 위하여 기증된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으로 세워지다. 불타는 조국애와 부강한 내 민족을 향한 그들의 염원은 영원한 혈맥의 고동이 되어 오늘과 내일의 번영을 기약하리라'라는 준공 동판이 설치됐다.
하와이 동포들은 상해 임시정부에 수십만 불을 보냈고, 정부 수립 이후 동지회 등이 앞장서 가옥을 구입해 호놀룰루총영사관으로 기증했다. 하와이 한인사회의 애국애족 정신이다.
▲ 지난달 31일 저녁 하와이 호놀룰루시 서라벌회관에서 열린 하와이 한인동포초청 리셉션에서 김두한(가운데) 인하대총동창회장, 조명우(왼쪽 첫 번째) 총장과 명예동문으로 위촉된 한인교포들이 위촉증서를 펴 보이고 있다./사진제공=인하대총동창회
▲한인사회 리더 9명, 명예동문으로 위촉…하와이동포 초청 리셉션 50여명 참석
31일 오후 호놀룰루시 서라벌회관 2층 연회장에서 열린 인하대총동창회 주최 하와이동포초청 리셉션에는 김지나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이반 정 한미재단 부회장, 신수경 한국일보 하와이지사장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김두한 총동창회장은 하와이 교포 9명을 명예동문으로 위촉하고 “교류와 소통의 폭을 넓혀 인하 영광을 구현하자”고 강조했다. 또 조명우 총장은 캠퍼스에 조성 중인 '하와이-인하공원' 현황과 대학 발전상을 소개했다.
김영태 재미 하와이체육회 회장은 “역사적으로 이승만 박사와 하와이 한인사회가 긴밀히 연결돼 있는 인하대의 명예동문으로 위촉돼 자랑스럽다”며 “인하대 동문이 거의 없는 하와이에서 자체적인 동문 행사를 수행하고 모교의 영예를 높여 인천과 하와이의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 하와이 인하대총동창회 명예동문
△한태호=재미 하와이체육회 고문
△김영해=하와이 한인문화회관 고문
△고서숙=고송문화재단 이사장
△조관제=임팩칼리지 학장
△변휘장=하와이 한인문화회관 부회장
△안나 림=케이에이우먼스클럽 회장
△김영태=재미 하와이체육회 회장
△아만다 장=하와이 한인문화회관 회장
△리버티 리=호놀룰루컨트리클럽 사장
[인터뷰] 아만다 장 하와이 한인문화회관 회장·변호사
“이승만 박사 인하대 설립 잊지 말아야”
▲ 아만다 장 하와이 한인문화회관 회장./사진제공=인하대총동창회
“이승만 박사가 정착한 하와이와 인하대는 깊은 인연입니다. 인하공대 설립을 위해 당시 15만불(900만환)의 종잣돈을 보내고,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서 공학도를 육성해야 한다는 이 박사의 교육의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만다 장 회장은 “일제강점기 하와이 한인들은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내는 등 한인사회를 이어온 역사적 기록과 유명 인물들이 많다”면서 “현재 하와이 인구 140만명 중 한인들은 5만6000명으로 4% 정도이지만 문대양 전 대법원장, 해리 김 빅아일랜드 전 시장, 실비아 루크 부주지사 등 훌륭한 한인들이 배출됐다”고 말했다.
그는 “초기 이민자들이 영사관을 마련하고 인하공대 설립도 도왔다”며 “이민 역사가 시작된 곳이지만 이를 기록하고 알릴 역사박물관이 아직 없고, 인천에 유치된 재외동포청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이민 정책을 펼 이민청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와이에는 일본·오키나와·중국·필리핀 문화회관이 있다. 아만다 장 회장은 “18년 전, 한인 문화회관 건립을 후원하는 한인들과 비영리재단을 만들었다”며 “상시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노인대학을 운영하면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계승해 나갈 교육의 장소, 역사박물관을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인하대총동창회가 하와이 방문을 통해 한인문화회관 건립 기금을 기탁해 왔다”며 “고송문화재단, 한인체육회 등과 함께 인하대 캠퍼스에 조성되는 하와이-인하공원을 후원하는 기금을 총동창회를 통해 기탁했다”고 말했다. 또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으로서 인하대학 설립에 기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하와이 호놀룰루=김형수 주필 khs@incheonilbo.com
/인하대학교 총동창회·인천일보 공동기획
출처 : 인천일보(https://ww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