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수 주필
우남(雩南) 이승만은 제헌국회에서 선출된 초대 대통령이고 국부(國父)이다. 오늘은 대통령제를 담은 대한민국 첫 헌법이 공표된 제헌 기념일이다. 제헌국회는 농지개혁법을 제정했다.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처벌특별법은 이승만 정부의 비협조로 좌절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돌풍을 일으킨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을 보면 저평가된 우남의 애국애족 실상을 엿보게 된다. 이승만은 반공포로 석방의 초강수를 두면서 6·25전쟁 직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쟁취했다. 오늘날 한미 군사동맹은 분단된 한반도와 세계 평화의 교두보로 작동되고 있다.
우남은 정치가, 언론인, 외교관으로 평가되지만 무엇보다도 민족 교육운동에 앞장선 교육가였다. 왕정개혁에 앞장서고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한 24세의 청년 이승만은 '박영효 쿠데타 음모 사건'에 가담한 고종 폐위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미결수로서, 수감된 한성감옥(서대문감옥)에서도 옥중 학교와 도서실 등을 운영했다.
우남 이승만, 민족 교육운동 펼친 교육가
우남은 하와이 이민 10년이 되던 1913년 2월 하와이에 정착하고 한인기숙학교(한인중앙학원으로 개명) 교장을 맡았다. 여학생 기숙사를 두고 남녀평등 교육을 실천한 선구자였다. 한인중앙학원 교장을 거쳐 한인여자성경학원을 세웠으며, 1918년 9월 '한인기독학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본격적인 민족교육을 전개했다. 1939년 워싱턴으로 가기 전까지 25년간 하와이는 우남의 강력한 민족 교육·독립운동의 전초기지였다.
해방당시 조선인 10명 중 8명은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문맹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도입하고 문맹률을 22%로 대폭 낮춘 교육정부였다. 전쟁 중에도 연합대학을 운영했다. 인하공과대학(인하대학교의 전신)은 이승만 대통령이 설립했다. 피란정부 부산에서 '인하대학 설립에 관하여'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하와이 이민 50주년을 기념하며, 미국의 MIT와 같은 공과대학 설립을 국무회의 결의와 인천시장의 찬성으로 공포한다'고 밝혔다. 우남이 하와이에서 운영했던 한인기독학원의 매각 대금 15만 달러가 인하대학 설립의 종잣돈이었다. 인천시로부터 부지를 받아 1954년 개교한 인하공대는 올해 창학 70주년을 맞이했다. 인하대학의 뿌리인 한인기독학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교육 106년이 되는 셈이다.
이승만 정부는 1957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해 대한민국이 세계 원자력 5대 강국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놓았다. 인하공과대학에는 국내 처음으로 원자력공학과와 병기공학과가 개설됐었다. 우남은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한 선각자였다. '학교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며 또한 나라를 만드는 곳'이라는 우남의 교육 철학이 대한민국을 만든 자산이다.
윤 대통령, 하와이서 인하대 설립과정 강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시각)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한인동포들과 만찬 간담회를 갖고, 인도태평양사령부를 방문해 한미동맹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윤 대통령은 동포 간담회에서 이민역사의 출발지인 하와이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께서 인재 양성과 독립운동에 매진하며 국가 건국의 기반을 마련한 곳”이라며 “이승만 대통령께서 MIT와 같은 공과대학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자, 당시 거금인 15만 달러를 쾌척하고, 그 귀한 뜻을 받들어 인천의 인과, 하와이의 하를 따서 인하대학교가 설립됐다”고 설명했다. 또 “많은 인재들이 인하대학교에서 과학기술을 공부하고 우리나라 성장에 중요한 인재로서 역할을 했다”면서 지난해 설립된 재외동포청을 통해 “하와이 차세대 동포들이 한국인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현지 사회에서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인하대와 인하대총동창회는 개교 70주년을 맞이해 지난달 21일 캠퍼스에 '인하-하와이공원'을 조성하고 대학 설립자 이승만의 조형물(이 대통령이 이원철 초대 학장에게 교기를 전달하는 사진 등)을 세우는 기공식을 준비했다. 그러나 하루 전 돌연 취소돼 파란이 일었다. 1979년 인하대 교정에 설치된 이승만 박사 동상은 1984년 운동권 세력에 의해 강제 철거된 바 있다. 기공식 취소와 관련 조형물 조성 사업에 물심양면으로 나선 동문들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동문 세력과 고 조중훈 이사장을 세우기 위한 인하대 재단의 입김이 불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창학 역사, 국가발전 자산으로 계승돼야
대학 설립자가 친일 인사거나 부패한 사업가라도 동문들이 설립자 동상을 쓰러트린 사례는 없다. 인하대가 또 한 번 우남의 대학 설립정신을 외면하고 씁쓸한 상처와 고초를 후대에 남기게 될까 우려된다. 인하대의 각별한 창학 역사와 배경을 왜곡 없이 수용하는 것도 개교 70년을 기념하는 수확이 될 수 있다.
이승만이 올해 첫 달 '이달의 독립운동가' 제정 이후 32년만에 이름을 올렸다. 긍정적인 재평가 작업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3대 세습의 북한과는 달리 이승만 정권의 기초 위에서 대한민국이 건재해 왔다. 한미동맹을 반대하고, 이른바 김일성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민족해방(NL) 주사파의 잔재가 희박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남 이승만 박사의 교육 위업은 정치이념 평가의 하부구조에 머물고 있다.
인하대 이사장실에는 '인하대학교 설립자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 '인하대학교 이사장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으로 설명을 붙인 인물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우남의 해외 독립운동을 기록한 <이승만 일기>, 정석(靜石)의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 책도 놓여 있다. 이해관계를 앞세워 인하대 설립 과정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희석하려는 시도는 우남의 교육정신을 교묘히 회피하는 결과로 남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이민의 역사와 공업입국의 뜻을 품은 인하대의 창학은 인천의 자산, 대한민국 성장의 역사로 계승돼야 할 사안이다.
/김형수 주필
출처 : 인천일보(https://ww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