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수 인천 남동구 지속가능발전협의회장
전국 모든 대학마다 설립 이유는 제각각이고 나름의 역사가 있겠지만 인하대학교만큼 그 출발점이나 역사가 한국의 현대사를 집약하고 있는 학교는 드물 것이다. 그리고 인하대의 설립 역사는 인천의 이민사와 교육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인하대의 장대한 서사에는 설립 주역인 이승만 박사와 인천에서 건너간 하와이 교민들, 그리고 조중훈 회장 등이 있다.
이승만이란 인물의 성격은 독립운동, 6·25전쟁, 한미동맹, 독재자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되고 있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어쨌든 이념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독립운동가 출신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6·25전쟁이라는 절체절명 위기 속에서 한미동맹을 체결하고 굳건히 하여 나라를 지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해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의 기틀을 만들었다. 반면 독재와 부정선거 등을 통해 수많은 학생과 시민을 희생시킨 점은 그의 씻을 수 없는 과오로 남아있다.
하와이 교민들은 나라가 힘없고 가난했을 때 이역만리 낯선 땅으로 떠난 인천 분들이다. 그들은 멀리 해외에서 이승만을 도와 독립운동을 했고, 6·25전쟁이 끝난 후에는 폐허의 조국에 기술, 공업 대학을 만들어 전쟁 복구와 기술인력 육성에 힘써 달라며 성금을 모아 보내주었다.그 성금을 기초로 설립된 학교가 인천의 '인(仁)', 하와이의 '하(荷)'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인하공과대학이다.
나라 잃은 유랑민 신세인 그들이 생활 형편이 넉넉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금을 모아준 것은, 조국의 재건과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이승만이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한동안 인하대는 어려움에 부닥친다. 이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인물이 바로 '대한항공'으로 잘 알려진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이다. 1968년 조 회장의 ㈜한진이 인하학원을 인수하면서 1971년 인하공대는 종합대학교로 발전하는 전기를 맞이한다. 조 회장은 생전에 수많은 투자를 통해 최신 시설에서 학생들이 수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
이렇듯 인하대의 역사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독립운동의 위대함, 전쟁의 비극, 전후 복구의 절박함, 눈물겨운 하와이 교민의 조국 사랑과 지원, 대기업의 육영사업 등 타 학교와 비교되는 서사가 담겨 있다.
필자가 40년 전인 1983년 인하대 신입생으로 입학했을 때 인경호 호수 한 쪽에 이승만 동상이 서 있었다. 당시 대학가는 민주화 운동의 거센 물결이 일어나고 인하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회민주화와 학원민주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필자는 이승만 동상을 쓰러뜨리는 현장에 두 번이나 참여했다. 그 후 인하대 교정에는 동상이 다시 세워지지 않고 그 받침대만 남아 동상이 있었던 흔적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인하대 개교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이승만을 설립자로서 기념하고 추모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였다.
필자는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리는데 두 번이나 참여한 전력이 있지만 이번 제안에는 공감하고 잘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승만 우상화나 개인 동상을 세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학교 설립 유공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당한 명예와 마땅한 존중을 받았으면 한다. 이념 과잉시대 때 벌어진 일은 이념의 색채를 걷어내면, 이승만을 인하대 설립자의 관점에서 마주하고 그의 역사와도 화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장수 인천 남동구 지속가능발전협의회장
출처 : 인천일보(https://ww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