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하와이 동포들의 교차 방문 이어지길
‘디아스포라학과’ 개설해 정체성 함양 나서야
인천시, 인하대-총동창회 120주년 준비할 때
▲ 김상열 (사학86) 한국이민사박물관장
인천 월미도 한국이민사박물관은 하와이이민 100년을 기념해 2008년 개관했다. 하와이교포들의 교육의지가 깃든 우리 대학의 창학 역사도 ‘인하대관’에 기록하고 있다. 내년은 선조들이 제물포항에서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이민에 오른 지 120년이 된다. “인하대학교는 우리 민족 디아스포라 귀환의 상징인 동시에 가장 민족주의적인 자부심을 가진 대학”이라고 평가하는 김상열(사학86) 한국이민사박물관장을 만났다. 하와이이민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본다.
12월 22일, 하와이이민 출발일
2008년 한국이민사박물관 개관
하와이 이민 1세대들이 마지막 본 모국의 도시가 인천이고, 마지막 본 조국의 땅이 월미도다. 2008년 하와이 이민 100년을 기념하여 이 곳에 우리 민족의 이민역사를 기록한 한국이민사박물관이 건립됐다. 이민의 원인과 여정, 거주국 정착, 한국인으로서의 동질성 유지 등 애환과 영광의 역사를 담았다.
하와이이민, 주권회복 앞당겨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으로의 노동 이민은 우리 민족 최초의 공식 이민이다. 인천에서 시작된 이민의 역사는 이제 193개국에 749만명이라는 이민사회로 확장됐다. 이민역사의 단초가 바로 하와이 이민이다. 무엇보다도 이민 생활 중 상실한 주권 회복에 크게 공헌했다. 모국의 백성은 일본 국적을 갖게 되었지만, 하와이 이민자들은 자랑스럽게 모국의 국적을 사용했다. 또 하루 10시간의 중노동으로 번 17 달러의 월급에서 매달 1달러 이상을 독립자금으로 쾌척했다. 1년의 두 달 치 평균생활비를 모아 300만 달러를 조성했다. 이 자금은 상해 임시정부로 들어가 독립운동의 맥을 이어가게 했고, 독립 무력 투쟁에 나선 대조선국민군단 양성에 사용됐다. 이들의 헌신이 모국의 주권 회복을 앞당겼다.
하와이 한인기독학교, 인하공대로 계승
하와이 동포들은 이민자 계몽을 위해 설립한 한국기독학원의 땅과 건물을 매각한 15만 달러를 모국의 대학 설립 기금으로 내놓았다. 한국전쟁의 부산 피난지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인하공과 대학 설립에 관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인천시가 건립 부지를 제공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건립 비용을 부담했다. 국민의 성금을 모아 설립된 것이 인하공과대학이다. 하와이 한인기독학교가 모국의 공업기술 역군을 양성하는 인하공대로 전개된 것이다. 우리 민족 최초로 공식이민을 떠난 하와이 동포들의 자랑스러운 모국으로의 귀환이다.
차세대 동포들과 상호 교류 확장해야
1902년 12월 22일 121명의 이민자를 태운 이민선이 월미도 해상을 출발했다. 인천광역시는 2022년 하와이 이민 120주년을 앞두고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디아스포라 귀환의 상징인 인하대학교는 당연히 동참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개교 다음해인 1955년 46명의 하와이동포 원로단이 학교를 방문해 인천시민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이후 동포들의 학교 방문이 이어졌으나 어느 순간 중단됐다. 인천은 이민의 출발지에서 이민사회가 교차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이민 120년을 기념하는 차세대 하와이 동포들의 인하대학교와 인천을 방문하는 행사를 개최해 하와이 동포 사회와 인천의 상생 발전을 논의하길 바란다. 모교와 총동창회가 해야할 일이다.
하와이 숯가마터, 3D스캔 등 보존 필요
하와이 동포들은 모국의 주권 회복을 위해 대한인국민회와 동지회에 성금을 기부했다. 대한부인 구제회는 독립선언서를 인쇄·판매해 독립자금을 만들었다. 우남 이승만 중심의 동지회는 숯가마를 만들어 숯을 판 대금으로 이민 동포의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하와이 빅아일랜드(하와이섬) 옛 동지촌에는 높이 6.5피트, 넓이 6 피트, 길이 50피트의 숯가마가 남아있다. 우리 총동창회의 하와이 역사문화탐방에서 발견된 장소다. 현재 훼손이 심한 숯가마의 보존은 사적지로 관리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2004년 총동창회의 매입 노력도 무산됐다. 동지회의 숯가마는 하와이 동포들과 모국을 연결하는 상징적 의미다. 보존을 위해 3D스캔을 하여 기록을 보존하고, 아울러 기록된 데이터를 이용해 모형 또는 축 소모형을 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또한 모교와 총동창회가 앞장서야 될 일이라고 생각된다.
인천, 집산지로서의 도시
1902년 12월 22일 인천을 출발한 현해환(겐카이마루)은 이틀간의 항해를 거쳐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이민자들은 신체검사에서 19명이 탈락해 102명이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 호놀룰루로 향했다. 102명의 거주지는 인천 67명, 부평 10명, 강화 9명으로 인천 지역 거주자가 86명으로 84%를 차지했다. 1883년 개항 이후 유입된 신문물, 신종교, 신문화를 접한 인천은 이미 국제도시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 사람들의 개방성과 국제성이 낯선 곳으로 이 주를 두렵지않게 한 이유였을 것 이다. 인천은 모든 사람과 물자가 모이고 흩어지는 집산지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인천은 디아스포라를 품은 도시라고 하겠다.
교명과 교가에 나타난 인하대의 정체성
인하대학교의 역사적 정체성은 교명과 교가가 갖고있는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인천의 仁, 하와이의 荷를 따서 만든 <仁荷>라는 교명은 디아스포라 귀환의 상징이다. ‘월미 팔미섬을 감돌아’로 시작하는 교가도 디아스포라를 품고 있다. 월미도는 마지막 본 모국의 섬이자 이민 역사의 출발지다. 팔미도는 인천으로 들어오는 항로의 정중앙에 위치하여 인천으로의 귀환을 상징한다. 인하대의 정체성은 새로운 삶을 위한 출발점이며, 주권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이민자들의 염원이 모국으로 귀환한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하와이이민 기념, 대학 박물관 확충해야
총동창회와 모교는 60주년기념관의 1층 공간에 ‘인하역사관’ 설립을 추진한 바 있다. 우리 대학의 역사는 다른 대학이 갖지 못한 특별한 출발점이 있다. 재외동포와 인천시민,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이 함께 설립한 고등교육기관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동문들이 모교의 설립취지를 알 수 있는 상징물과 장소는 그리 많지않다. 실내체육관 모퉁이의 ‘하와이교포기념관’이라는 간략한 설명판 하나가 전부다. 모교 인하학원이 디아스포라 역사의 산물이고, 조국 발전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염원이 담겨있으며, 그 뜻에 부응하기위해 동문들이 어떻게 애써 왔는지를 기념해야 할 것이다. 인하대학교박물관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모교의 설립취지에 따라 ‘디아스포라학과’의 개설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모교는 디아스포라 역사의 산물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재외동포들 중 하나는 차세대들이다. 이민의 출발지 인천은 차세대 이민자들과의 교류와 상생 협력을 지향할 인재들이 필요하다. 따라서 디아스포라를 품고있는 모교에 디아스포라학과의 개설을 기대하게 된다. 이는 모교의 설립취지와 정체성을 규명하는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언제부터인가 단절되었던 인천과 하와이, 인하대학교와 하와이대학교 간 교류가 차세대 이민자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재생산되길 기대한다. 대한민국의 현재는 재외동포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보다 늦게 왔거나 찬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교의 정체성인 디아스포라를 이성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또 관용이라는 마음가짐을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형수 편집주간